조순복(58·여·경남 진주시)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경북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혼자 걷는데 지장이 없고, 언어 소통에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외래 진료를 받아도 무방한 이른바

‘사회적 입원’ 환자입니다. 물리·재활 치료를 받지만 굳이

입원까지 할 필요가 없는 환자입니다. 조씨의 집은 따로

없습니다. 이 병원 3층의 4인 병실이 사실상 집입니다.

조씨의 공간은 4.3㎡(1.3평). 여기서 5년을 살았습니다.

의식주를 다 해결합니다.

침대 주변에는 살림도구가 가득합니다.

탁자에는 고추장·랩·참기름·두유·커피·컵·종이컵 등이, 옷장 겸

서랍장에는 유산균제제·반짇고리·때수건·외출복 등이, 침대

링거 거치대에는 모자와 우산이 걸려 있습니다.

이 병원에는 조씨 같은 장기입원자가 10명입니다.

조씨는 그들을 “언니, 오빠”라고 부릅니다.

조씨는 “체조·노래·스트레칭 강습에 빠지지 않는다.

배드민턴을 가장 좋아한다”며 “이런 건 밖에서 하기 어려운데,

병원에서는 다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초수급자라서 진료비가 한 푼도 안 듭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조씨처럼 ‘병원이 집’인 사회적 입원 환자가 1만7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요양병원 환자는 의료

필요도에 따라 최고도-고도-중도 등 7개로 분류하는데 사회적

입원 환자는 가장 낮은 신체기능저하군에 속합니다. 지난해 이

그룹 환자 5만8505명 중 입원 기간이 6개월이 넘은 사회적

입원 환자가 1만7000여 명(28.5%)으로 추정됩니다.

전년보다 15% 늘었습니다. 1년 넘은 사람도 1만여 명에

달합니다.

이들은 병원 생활이 불편해서 어떡하든 집으로 가려고 할 것

같지만 실상은 반대입니다. 오히려 “집보다 병원이 좋다”고

말합니다. 김정선 전남대 간호학과 교수가 전남지역 3개

요양병원에 6개월 이상 입원한 노인 환자 15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입니다. 대부분 고혈압·당뇨병·뇌졸중·척추질환

등 만성병 환자들입니다. 왜 병원이 좋을까요?

“식사·빨래가 다 해결돼요. 하다못해 전기세까지 복잡한

게 다 해결되니까 좋죠.”(80세 남자)

친구가 생기고 아파도 걱정이 없습니다. 83세 남자 환자는

“말벗이 있다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합니다. 82세 여성은

“조금만 아파도 (의료진이)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감기라도

걸리면 기침약을 지어줍니다. 어떤 자식이 그렇게

하겠어”라고 말합니다. 외출·외박도 자유롭습니다.

한 할아버지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여럿이서 장애인

콜택시나 일반 택시를 불러 나간다”고 전했습니다.

‘새벽 3시 일어나서 샤워, 기도, 신문·책 보기, 아침 먹고

물리치료, 점심 먹고 물리치료, 저녁 먹고 휴대전화로 일본

영화를 보다 밤 10시 취침.’ 79세 할아버지가 밝힌 하루

일과입니다. 병원 생활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83세 할아버지는 “집보다 병원이 더 좋다. 편리하니까”라고

병원 예찬론을 폅니다. 병원이 집이 되면서 일종의 커뮤니티가

생깁니다. 고관절 치환 수술을 받은 67세 여성 환자(2년

입원)는 “내 옆 노인들이 퇴원하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더불어 사는데 집에 가면 혼자인 게지”라고 말합니다.

그는 치매 환자가 입원해서 힘들어 할 때 같이 노래 부르고,

병원 프로그램에 일일이 데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입원의 가장 큰 이유는 퇴원해도 갈 곳이

없다는 점입니다. 70세 할머니는 “죽어도 병원에서 죽어야지.

집이 없어 갈 수도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88세 여성 환자는

“집에 가라고 할까 봐 죽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집이 있어도

문제입니다. 경북의 한 요양병원 환자 이상진(59·경기도

안산시)씨는 8년째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곧잘 걷고

양손도 자유롭습니다. ‘이렇게 건강한데 왜 입원했냐’는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이씨는 “다시 쓰러질까 봐 염려돼 병원을

나가기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기평석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부회장은 “사회적 입원 환자는

갈 곳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길거리에 내쫓을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요양병원이 부분적인 사회복지

기능을 하는 기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김정선 교수는 “요양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환자가

원하는 생활서비스를 다 해주니까 환자가 만족하게

된다”며 “퇴원해도 갈 데가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또 ▶요양병원의 환자 부담금 할인 ▶가족의

수발 환경 미비 ▶장기요양등급을 받기 어려워 요양원 입소가

어려운 점 ▶사회적 입원 환자를 수용할 만한 케어 인프라 미비

등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또 의료급여를 받는 저소득층은

입원비가 사실상 무료라는 점, 본인 부담 상한제(연간

의료비 부담을 120만~500만원으로 제한하는 제도)가

적용된다는 점도 사회적 입원에 한몫합니다.

일부 요양병원이 불법적으로 환자 부담을

경감·면제하면서 환자 유치에 열을 올립니다. 사회적 입원

환자 1명당 약 200만원이 나옵니다. 물론 여기서 인건비 등을

지출합니다. 요양병원 간호사 B씨(62)는 “병원 오픈 때는

무조건 환자를 까는(입원시키는) 거죠. 병실을 채우는 게

우선이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김승희 의원은 “신체기능저하군에 속하는 환자 중 질병 치료가

아닌 생활·요양 등을 해결하려고 들어온 사람이 사회적 입원

환자인데, 이들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의 불필요한 지출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약 800억원의 건보

재정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정선 교수는 “요양시설(요양원)에 노인전문 간호사를 배치해

의료처치를 강화하면 요양병원의 사회적 입원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승희 의원은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역할이 뒤섞여 있어서 이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장기요양등급 기준을 완화해 집에서 요양 서비스를 받게

유도하거나 의료·주거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는 “사회적

입원을 줄이려면 주거와 의료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의료형

주거시설이 있어야 한다. 환자 유형에 따라

치매형·재활형·간호형 등으로 세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호서대 사회복지학과 이용재 교수는

“지역의 종합복지관·주민센터에서 의료·가사·영양 서비스를

환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며 “일본처럼 맞춤형 서비스를

연계하는 통합사례관리사를 두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적 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