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게 오르는 전셋값을 봐. 아무래도 집을 사야 할 것 같아.
"(40대 동생) "무슨 소리. 난 노후를 대비해 집을 팔 마지막
기회가 왔다고 보는데."(50대 형)
지난 설 명절 때 만난 가족의 대화에서 집값 얘기가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부 지역 전셋값이 집값의
90%까지 치솟았습니다. 전셋값에 밀려 집값도 5~10%씩
회복한 곳이 많습니다. 서울의 아파트 분양가는 1년 새
15%나 뛰었습니다. 주택 거래도 부쩍 늘어 버블기였던
2006년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 중입니다.
건설업체들은 신이 났습니다. 올해 전국 아파트 분양
계획은 35만 채로 사상 최대 물량입니다.
모처럼 달아오른 주택시장을 보며 사람들의 고민은 깊어
갑니다. 집이 있든 없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집값은 사실
귀신도 맞히기 힘듭니다. 거시경제는 물론이고 정부 정책과
투자심리까지 온갖 요인이 얽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3년 이상 중장기 집값 흐름을 짐작하게 하는
변수들은 분명 있습니다. 소득과 인구,금리,주택수급
등 집값을 떠받치는 4개 기둥 말입니다. 이게 약하면 집값은
결국 무너질 수 있습니다. 집을 살까 고심하는
무주택자의 입장에서 4개 기둥의 강도를 점검해 봅시다.
먼저 소득입니다. 집값이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르려면
누군가 그런 가격에 집을 계속 사 줘야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주택 시장의 주력 수요층이 될 30~40대 가구는
소득이 정체 내지 감소 추세입니다. 기업 구조 조정과
자영업 몰락이 이들을 옥죄고 있습니다. 20대 청년층은
더욱 딱합니다. 아예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저소득
계약직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소득 대비 집값(PIR)을 봐도
위험 징후가 엿보입니다. 서울의 PIR은 현재 10배로
홍콩(13.5배)에 이어 세계 최고 급입니다. 도시 근로가
가구의 연 평균 소득은 5600만원인데, 서울 집값은
평균 5억6000만원으로 꼭 10배라는 얘기입니다. 강남만
따로 보면 가구당 평균 소득은 1억원이 안 되지만 집값은
평균 10억원으로 10배 이상입니다. 뉴욕(7배),런던(8배),
도쿄(7.5배) 등 세계 최고 부자들이 사는 도시보다
높습니다. 경기도가 현재 7배로 이들 도시와
엇비슷합니다.
둘째, 인구 구조입니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7년을
피크로 줄어들게 돼 있습니다. 3년 후면 40대
후반의 주력 소비층이 감소합니다. 이른바 '인구
절벽'입니다. 이즈음 베이비붐세대의 은퇴도 절정을 이뤄
집을 줄이려는 사람이 급증하게 됩니다.
셋째, 금리입니다. 요즘 정부까지 나서 연 1~2%대의 대출을
해 주겠다며 주택시장에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5억원을 빌려
봐야 월 이자가 110만원 정도입니다. 집을 살 유혹이 생길
만합니다. 하지만 금리가 계속 이렇게 낮을 순 없습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도 슬금슬금 따라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2% 금리가 3%로 오른다고 할 때
여전히 저금리는 맞지만 이자 부담은 졸지에 50%나
늘어납니다. 아무리 이자가 싸도 빚은 무서은 괴물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한국의 주택대출은 만기가 3~5년으로
짧고 변동금리로 돼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넷째, 주택 수급입니다. 수도권의 주택은 앞으로 3년 정도
계속 모자라게 돼 있습니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재건축 때문입니다. 정부 규제가 풀리면서
강남에만 8만8000가구, 서울 전체로는 15만 가구가
재건축을 준비 중입니다. 한꺼번에 아파트가 대거
헐리다 보니 이들이 임시 거주할 전셋집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연쇄 파동으로 향후 3년간 서울과 수도권의
전셋값은 계속 치솟을 게 뻔합니다. 집값도 떠릴려
올라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현혹돼선 안
됩니다. 3년 후부턴 재건축 입주가 시작돼 거꾸로 집이
확 늘어나게 됩니다. 올해 사상 최대로 분양되는
아파트들도 그때쯤 입주가 시작됩니다. 앞서 설명한
인구 절벽과 맞물려 기존 주택의 매물도 쏟아져 나올
수 있습니다.
4개 기둥 모두가 허약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기둥을
보강할 초강력 콘크리트가 있긴 합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역설하는 경제 활성화와 구조 개혁입니다. 그게
성공해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가계소득이 늘어나면
집값도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판단은 집을 사려는 당신의 몫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