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히끗히끗하지만 화려한 하와이언 셔츠를 입고, 배우자와 친구

들과 함께 지중해나 카리브해 해변에서 마티니 한잔을 즐긴다. 영화

에서 보는, 그리고 누구나 꿈꾸는 노년의 모습니다. 여기의 전제는

1번 돈이 많고, 2번 건강하고, 3번 배우자와 친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이 중 사람들이 가장 먼저 현실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장벽은 금전적인 문제입니다.

KDB 대우증권 미래설계연구소가 50세 이상, 은행잔고 1천만원 이상인

고객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봤더니 이들 대부분이 더 많이 저축을

하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했습니다. 문제는 돈인 것입니다.

"중소기업에 갓 입사해 제 월수입이 200만원 중반대입니다. 원룸

월세에 학자금 대출 등을 갚으면 통장에서 100만원 이상이 빠져나가요.

교통,통신,생활비로 100여만원을 쓰고 나면 여윳돈이라고 해봤자

50만원이 채 안되는 거죠. 이 돈은 명절에 드릴 부모님 용돈이나 나중에

전세로 옮기기 위한 용도로 쌓아둬요. 그런데 전세로 옮기면 문제가

해결되나 그것도 아닙니다. 결혼자금 마련해야죠. 이런 상황에서 노후

준비를 하라구요?"

대학 졸업 이후 직장에 다니기 위해 서울에 온 A씨(29,여)는 노후 준비

얘기가 나오자 88만원 세대의 한을 줄줄 풀어놓았습니다. 그나마 최근

정규직으로 고용이 됐으니 자신의 사정은 나은 편이라고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현재의 연애와 결혼, 출산도 포기하는 삼포세대에게 30~

40년 후의 먼 미래 준비는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사치라는 것입니다.

4050세대는 낀세대의 고충을 토로합니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으면서 이들에게 모든 돈으르 쏟아부었고 연로하신 부모를 봉양

하며 또 많은 돈을 써야 합니다. 정작 자신이 늙었을 때는 지금의

자식들에게 기대기는 어려운 세상이 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차곡차곡 노후 준비를 한 경우라도 미래에 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직장인 B씨(48)는 "현재 65세 이상은 국민연금이라도

많이 받지만 우리 세대는 적은 액수의 국민연금, 폭락한 집값,

낮은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 등 모든 여건이 불리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60대 이상 세대라고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노후 준비의

중요성이 최근 부각된 것일 뿐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런 개념 자체는

사실상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노후 준비가 가능했던 20~30년

전에는 자식이 최고의 노후안전판이었습니다. C씨(68,여)는

"인내하고 희생하던 게 미덕이던 시절을 살았다." 며 "목돈이라고

해봤자 아파트 한 채 깔고 앉은 것밖에 없고, 어렵게 살다 보니 몸이

상해서 돈이 있다 한들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노후 준비의 실패는 현재의 기대 수명보다 30~40년 후 실제 수명이

더 길 때 나타납니다. 80세까지 넉넉하게 쓸 돈을 마련해도 100세까지

살게 되면 20년 동안 소득에 구멍이 생깁니다. 최근 정부에서 연금

3중판을 정착시키려는 것도 이런 장수 리스크 때문입니다. 연금 3중판

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이릅니다. 세 개의 층이 튼튼히

쌓이면 노후를 부족함 없이 보낼 수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연금 외에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가입을 줄기차게 독려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국민연금의 고갈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

기분으로 39.6% 수준입니다. 국민연금 평균 가입 기간이 27년인 점에

비춰보면 실질적인 소득 대체율은 25.8~30.7%에 그치는 셈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공적연금 소득

대체율이 지난해 기준으로 54.4%인 것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입니다.

급격하게 줄어드는 연금 납입액으로 인해 20~30년 후 노인층의 연금

수령액은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실한 돈줄을 보완해 주는 것이 퇴직연금과 개인연급입니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87조5,102억원에 이릅니다.

규모는 갖춰졌는데 문제는 연금 운용수익률입니다. 개인이 선택한

증권,자산운용사의 퇴직연금 수익률에 따라 연금액이 결정되는 확정

기여형(DC) 퇴직연금의 운용수익률은 지난해 2%대에 그쳤습니다.

정부가 그동안 40%로 묶여 있던 주식과 펀드 등 퇴직연금의 위험자산

보유한도는 최대 70%까지 확대한 것도 낮은 운용 수익률을 극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초 퇴직연금이 1순위로 뒀던 안정성 대신 수익성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만큼 투자 위험성도 높아졌습니다.

국민연금의 낮은 소득대체율과 퇴직연금의 지지부진한 운용

수익률의 공백을 메워줄 마지막 구원투수는 개인연금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개인연금 가입률은 선진국에 비해 아주 저조한

수준입니다. 보험개발원의 2012년 개인연금 가입현황에 따르면

개인연금 가입자는 800만명으로 전체 국민의 15.7%에 불과합니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자는 가입률이 5.7%에 그칩니다. 개인연금

가입률을 연령대별로 보면 40대(28.0%)가 가장 높고, 30대(25.3%),

50대(22.9%), 60대(9.7%), 10대 이하(6.3%), 70대 이상(1.5%)

등입니다. 사적연금 가입자의 소득대체율도 21.2%(퇴직연금

13%, 개인연금 8.2%)인데 이 역시 OECD 등 국제기구

권고비율(40%)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