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분기 한국 경제의 성적표는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세수 결손에 따른 정부의
건설투자 부진, 윤달에 따른 결혼시장 위축 등 일시적인
요인의 영향도 있다고 하지만 1천조원을 훌쩍 넘어선
가계부채의 소비 제약, 흔들리는 수출 경쟁력 등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한은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2014년 4분기 및 연간 GDP 속보'에서는
이런 구조적인 취약성이 수치로 불거졌습니다. 일단 작년
4분기 성장률은 9개분기 만에 0.5%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분기 성장률은 2012년 3분기 0.4%에서 2013년 3분기
1.1%까지 상승세를 타다가 하락세로 돌아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작년 2분기에는 0.5%로 떨어졌습니다. 이어 작년
3분기(0.9%)에 잠시 회복되는 듯했으나 결국 2012년 3분기와
같은 수준이 됐습니다. 작년 4분기보다 분기 성장률이 더
낮은 가장 가까운 시기는 2009년 1분기(0.1%)입니다.
성장세가 힘을 잃은 모습은 한국 경제의 양 날개인 내수와
수출 모두에서 불거졌습니다.
지난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1.7%로 금융위기 때인
2009년(0.2%) 이후 5년만에 최저입니다. 민간소비는 2010년
4.4%로 정상화됐다가 2011년(2.9%)과 2013년(2.0%)에는
2%대로, 그리고 지난해는 1%대로 낮아진 것입니다. 단순히
세월호참사에 의한 심리 위축이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윤달에 의한 결혼시장
위축 등 일시적이고 불규칙한 요인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민간소비의 위축에는 성장의 과실이
가계보다는 기업에 쏠리면서 나타나는 가계 소득
증가세의 부진, 가계부채의 소비제약 등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한은 경제통계국장도
"1만5천건 가량의 결혼식이 전분기로 앞당겨지거나 일부는
다음 분기로 미뤄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윤달의 소비 위축
영향 등을 설명하고서 "기본적으로는 가계부채 등 요인
때문에 민간소비가 위축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가계가 1년간 번 돈으로 빚을 상환할 수 있는 여력을
보여주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가계신용 기준) 비율은
지난 9월말 현재 역대 최고인 137%로 치솟았습니다. 소득에
비해 이자나 원금 상환 부담이 커지다 보니까 소비 여력이
제한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노후 불안이 커지는 점도 소비를 제약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8월초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이후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게 빚은 빠르게 늘고
있어 이 비율은 더욱 악화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버팀목이 돼어준
수출 제조업이 심상치 않습니다. 작년 4분기 재화 및
서비스의 수출은 0.3% 줄어 작년 3분기(-2.2%)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수출이 2개 분기 연속
줄기는 금융위기 때(2008년 4분기 ~ 2009년 1분기) 이후
처음입니다. 수출의 비중이 큰 제조업은 수출 감소에 따라
마찬가지로 역주행했습니다. 제조업의 GDP는 작년 4분기
0.3% 줄어 작년 3분기(-0..8%) 이어 감소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역시 금융위기 때(2008년 4분기 ~ 2009년
1분기) 이후 처음입니다. 한국 경제의 한축인 수출의 균열
조짐은 가장 큰 수출 시장인 중국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중국에 대한 수출(통관기준)은 0.4%
줄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통관에는 잡히지 않지만 한국
경제의 주요 소득원인 가공무역이나 중계무역 등 무통관
무역 부문에서 더욱 큰 위축이 감지된다는 점입니다.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중국의 규제 등으로 작년 하반기부터
무통관 수출 영역이 빠르게 악화됐다"며 "대 중국 수출이
둔화하면서 수출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제조업도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유의해서 볼 대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 경제가 최근 활력이 떨어진 모습이라는 데 대해서는
대부분 전문가들이 동의합니다. 다만, 최근 경기 부진의
원인을 보는 시각에 따라 병명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한은은 경기가 회복세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는 구조적인 문제에 주목하면서 저성장의
고착화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 이
상태라면 경제가 계속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진다는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대투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성장률이 예산을 짤 때보다
계속 낮아지면 세수부족은 구조적인 문제가 된다"며서 현
경기상황을 "만성적 저성장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는 저유가, 환율 효과가
있어서 분기별 1%대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는 보인다"면서도
"전체적으로 수요을 이끌어나가는 힘이 약해서 경제 활력이
떨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