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에서 오는 안내문을 보면 연금이 개시되는

연령과 함께 향후에 매월 지급될 연금액을 현재 가치 기준으로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만 62세부터 현재가치 기준으로 매월

140만원이 지급된다는 내용인데, 지금 140만원으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을 연금 개시 시점에도 구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보면서 ‘노후에 반드시 지출해야 할 경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퇴직연금이나 연금저축과 같은 사적연금으로

은퇴설계를 할 때는 위와 같은 소득관점을 가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를 모았다’거나 ‘은퇴할 때까지 얼마를 모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목돈 모으기 전략으로 소위

자산관점이라고 합니다. 은퇴설계를 할 때 자산관점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로 왜곡을 가져옵니다.

첫째, 자산의 크기와 소득의 크기가 비례하지 않습니다.

6억원의 자산을 가진 사람과 3억원의 자산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만일 6억원 자산가는 운용수익률이 1%이고

3억원 자산가는 4% 수익을 낸다면, 전자는 매년 600만원의

소득이 나오는 반면 후자는 1200만원의 소득을 얻습니다.

자산 크기는 절반에 불과하지만 소득은 오히려 두 배가

됩니다.

둘째, 같은 액수의 자산이라도 은퇴 시점의 금리나

자산수익률에 따라 소득이 달라집니다. 10년 전 금리가

5%일 때, 2500만원 소득을 매년 얻기 위해서 5억원을 모으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 은퇴할 때 이를 달성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은퇴할 때 금리가 1%로 하락해버리면 이자소득은

500만원에 불과하게 됩니다. 5억원을 모으는 자산목표는

달성했지만 은퇴 시점의 금리 하락으로 정작 소득은

5분의1로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금리가 하락한다고 해서 지출

경비는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생활비 조달에 차질이 생깁니다.

셋째, 목돈은 써 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녀의 결혼이나

본인의 해외여행과 같은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처럼 소득으로 확정을 해 놓을 경우에는 여기에 돈을

지출할 수 없지만, 목돈을 가지고 있을 때는 마음을 스스로 다

잡지 않는 한 불요불급한 곳에 지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칫하면 핫바지 방귀 새듯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처럼, 자산관점을 가질 경우 안정적인 노후 소득흐름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자산이 소득으로 전환되는 데는 수학

공식에 대입해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적연금을 관리할 때는

국민연금처럼 소득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나의 퇴직연금과

연금저축으로는 은퇴 후에 얼마의 소득을 지속적으로 매월

얻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전체 은퇴설계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퇴설계를 소득관점으로 바꾸면 자산의 수익과 위험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서 자산선택 기준도 달라집니다.

자산관점에서 위험한 자산이 소득관점에서는 안전한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만기 10년의 물가연동채권은 물가에

연동되어서 이자를 지급해주므로 실질소득의 변동이 없습니다.

지금 100만원 이자를 받게 해 놓으면 만기까지 물가에

연동해서 확정적인 이자를 지급해주기 때문입니다.

노후지출을 충당하는데 불확실성이 없는 소득흐름입니다.

하지만 물가연동채권은 금리의 상승·하락에 따라 채권가격이

변동합니다.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인프라펀드도

장기적으로 소득변동성은 별로 없지만 자산가격은

단기적으로 변동합니다. 이 두 자산은 자산관점에서는 가격

변동성이 커서 위험이 크지만 소득관점에서는 상대적으로

위험이 크지 않은 자산입니다. 소득관점으로 보면 은퇴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이런 자산의 비중을 늘려야 합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머튼(R. Merton)교수는 퇴직연금의

올바른 관리과정을 설명하면서, ‘연금가입자들을 현명한

사람으로 바꾸는 것보다 그들에게 현명한 질문을 던지는 게

낫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은퇴하면 현재 가치 기준으로

얼마의 소득을 얻을 수 있을지를 자문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