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최근 사석에서 현재의
복지 정책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내년 7월부터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모든 0~5세에게 10만원씩 주는 아동수당을
저소득층에 몰아주는 것이 더 낫다고 운을 뗀 그는
기초연금에도 쓴소리를 했습니다. 그는 “서울에 집이 있고
어느 정도 소득이 있어 또래 친구들에 비해 여유가 있는 나도
기초연금 대상자”라며 “차라리 내게 줄 것을 형편이 어려운
다른 노인들에게 몰아서 주는 게 국가 차원에서는 더 낫지
않은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이는 한 해 10조원을 훌쩍 넘는 예산이 노인 지원을 위해
투입되지만 노인의 삶은 악화 일로를 걷는 핵심 이유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인복지 전문가는 “한국의 노인
상대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높은데
이를 낮추려면 여건이 어려운 계층을 타깃으로 현금성
급여를 늘리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보편적 복지를 하느라
예산은 예산대로 나가고 빈곤율은 빈곤율대로 오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초연금은 2014년 7월 도입됐으며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기 위해 되도록 다수의 노인(소득
하위 70%)에게 혜택을 주도록 설계됐습니다.
수급자가 많다 보니 주는 돈은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극빈층 노인에게 매월 고작 20만원만 지급돼 빈곤율이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기초연금이 꼭 필요하지
않은 계층에도 쥐어 줘 재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실제 노인 관련 예산은 급증하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 예산은 올해
9조5,000억원으로 5년 전인 2012년(3조9,000억원)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여기에는 기초연금,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노인 돌봄 서비스, 노인 관련 시설 확충 등이
포함됩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중 생계·의료·주거급여를 받는
노인도 많은데 관련 예산을 포함하면 규모는 더 불어납니다.
올해 기초생보 전체 예산은 약 10조원이며 수급자 중 노인은
약 60%입니다. 단순 계산하면 6조원 정도가 노인에게
투입됩니다.
그러나 노인의 삶은 오히려 역주행하는 실정입니다.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2006년 43.6%였지만 그동안
수십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2016년 47.7%로
오히려 악화했습니다. 이는 OECD 평균의 3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노인 자살률도 2015년 현재 10만명당
58.6명으로 2014년의 55.5명에서 오히려 올랐습니다.
OECD 평균의 약 3배에 달합니다.
기초연금을 주더라도 지속 가능하도록 ‘일하는 복지’도
어느 정도 유도해야 했지만 부족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비중은 전체 노인의 4.3%에
불과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 노인 일자리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 사람(18.2%)의 4분의1에도 못 미쳤습니다. 노인 일자리
규모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는 뜻입니다.
급여도 박합니다. 현재 노인 일자리 중 약 90%가
‘공익활동형’이며 지급액은 매월 최대 27만원(최근
추가경정예산 통과로 22만원에서 인상)에 불과합니다.
일자리 참여자 중 60%가 생계를 위해 일한다고 답했는데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노인
일자리 참여 노인의 근로만족도도 2.08로 임시·일용직
근로자(2.54)보다 낮습니다.
노인 정책이 중구난방 식으로 널려 있는 점도 문제입니다.
정경희 보사연 선임연구위원은 “5년 주기로 만들어지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있지만 노인 정책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은 명시되지 않았다”며 “노인
소득·건강·돌봄·경제활동·여가 등 어떤 분야를 우선 해결할지
논의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노인보건·복지 기본계획을 5년 단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중간중간에 수립하는 것을 검토할 만하다”고
제언했습니다.
노인 예산을 전달하는 ‘파이프라인’도 정리가 안 돼 있습니다.
중앙·지방자치단체에다 다양한 전문기관, 대한노인회 등이
얽혀 있어 중복 지급 논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지난
2015년 보건복지부는 노인 기초연금과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85세 등 고령자에게 주는 ‘장수수당’이 중복된다며 이를
중단하라고 권고했지만 몇몇 지자체는 이를 계속 지급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는 제도가 하나 도입될 때마다
개별적인 판단하에 집행 주체가 결정됐고 작동 실태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전달 체계에 대한 평가와
개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